포토 에세이

오희근 장로: 가정적인 남자, 직장 간부, 교회 지도자

오희근 장로는 대한민국에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지도자다. 하지만, 전문 성직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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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보수를 받지 않고 자원봉사하는 회원들에 힘 입어 교회의 상당 부분을 운영한다. 사실 이런 평신도 목회는 이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각 지역에 있는 회원들의 집합소를 “와드”라고 하는데, 이 와드가 세계 곳곳에 수만 개 있으며, 자원봉사하는 회원들이 “부름” 또는 “임무지명”을 받아 서로에게 의미 있는 봉사를 한다. 회원들은 자기가 받은 부름에 보통으로 주 당 5~10시간 가량을 사용한다. 어떤 부름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오희근 장로처럼 바쁜 사람이 어떻게 많은 책임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으며 이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연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이며 성공적인 직장인이었으나, 세상의 성공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개인의 의무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조그만 기적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군복무 시절의 경험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먼지투성이 도로 위에서 얻은 깨달음

산은 지형이 험준하고 푸르렀으며, 휴전선을 따라 파손되어 먼지투성이인 도로가 이어져 있었다. 병사들이 도로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오희근은 평탄치 않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저는 오랫동안 진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도로 복구 작업을 하면서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제게 기적이 일어났지요. 머리를 들어보니 제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지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문득 세상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님을 마음 속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제 인생이 전과는 달라질 것임을 깨달았지요. 눈물을 흘리며 다시 작업에 임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 부모님, 형제들, 이웃

오희근은 1957년에 보은이라는 작은 농촌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아들 중 셋째로, 유학에서 가르치는 도덕관을 신봉하는 따뜻한 부모님과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에는 명심보감을 배웠으며, 소년 시절에는 그 책의 첫 구절인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을 준다”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작은 농지를 사서 집이 20여 채 밖에 없는 마을인 오창으로 이사했다. 어린이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모든 집 문이 열려 있어 아이들은 어디나 갈 수 있었다. 오희근의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던 이웃과 아주 친해졌고 그 집에는 예쁜 딸이 있었다. 이렇게 오희근은 장래의 아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일곱 살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이들 두 가족의 유대는 나중에는 자녀들과 손녀들까지도 이어졌다.

오희근이 태어나기 직전에 부모님은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상이 변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현대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경제적 문제로 아들 모두를 교육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오희근의 큰 형은 아직 어렸지만 동생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기로 했다. 그는 동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집에 남아 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것이 장남의 의무라고 여겼다. 네 동생들은 모두 대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

“큰 형님의 희생은 제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큰 형님의 희생과 예수님의 생애 사이에 비교되는 면이 많았거든요.”라고 오희근은 말했다.

불행히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결국 농지를 팔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하지만 농지를 팔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둘째 형이 큰 돈을 벌었다. 둘째 형은 곧바로 새로운 농지를 사서 자신의 성공을 뒷바라지 해준 형에게 주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을 준다.

진리를 추구하는 병사

파손된 도로 위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오희근은 성경과 종교 서적을 공부했다. 찬송가는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으나 어느 날 밤에 장기 자랑이 열렸다. 목소리가 좋은 한 병사가 앞에 나와 반주 없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모든 병사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 순간, 저는 가슴 속에서 기적을 느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성경에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기독교가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한 그는 계속해서 읽고 공부했다. 그러나 교회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여기저기 예배에 참석해보았다. 어느 날 동료 병사가 말했다. “교회에 들어가려면 그전에 내 친구와 상의해봐. 좋은 친구인데 자신이 진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오희근은 그 사람을 찾아가 만났다. 그는 사물함에 경전을 두 권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몰몬경이었다.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후, 오희근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진리를 찾았다고 믿습니까?” 그는 “예.”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즐거운 여정

그 후 오희근은 2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부했다. 그 길은 즐거웠지만 쉽지 않았다. 이 교회에 속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부모님을 존중했기에 그는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며 기다렸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여러 해 동안 공부하고 부모님과 많이 상의한 끝에 부모님은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고, 그는 1981년에 교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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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를 하기 전에 오희근은 대학에서 2년을 재학하며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수학을 잘했지만 언어와 작문은 엉망이었다. 게다가 말도 자주 더듬었다. 군복무를 마친 후 그는 새로운 각오를 갖고 복학했다. 하지만 말 더듬는 습관이 재발했다. 법학을 하려면 말을 통해 주장을 펼치고 심문을 해야 했는데,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듬는 말투는 더욱 심해졌다.

그는 깊이 생각하고 기도를 드렸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위안을 받고 싶어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나온 잡지인 성도의 벗 한 권을 펼쳤다. 위안거리를 찾아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가 발음하기도 어려운 낱말로 된 문장이 적힌 페이지가 펼쳐질 뿐이었다. 낱말 하나하나가 말을 더듬게 만들었다. 문득 이 문장을 발음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어쩌면 말투 문제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문장을 기억한 다음 몇 주에 걸쳐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수없이 반복했다. 그는 더 이상 더듬지 않게 되었다.

가족과 봉사를 통해 일어난 기적들

파손된 도로 위에서 조그만 기적이 일어난 뒤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축복을 받고 있다. 여러 회사에서 관리자로서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해왔다. 또한 훌륭한 결혼 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두 자녀와 두 손녀를 두었다. 그는 자원봉사로 수행한 의무를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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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지도자로서 오희근 장로는 사회 생활도 하고 자원봉사활동도 하며 “평신도 목회 활동”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의 부름은 자신이 원하거나 선거 운동을 통해 받는 것이 아니다. 회원들은 교회 지도자를 통해서 온 임무지명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자발적으로 판단한다. 이들 지도자들은 누구에게 부름을 줄 것인지를 기도를 통해 영감을 구한다. 대부분의 경우 교회 회원들은 부름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어떤 회원은 다 합치면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여러 회중을 상당 기간 동안 이끄는 지도자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름에서 해임된 후, 지역 회중 중에 15세 청소년 몇몇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도록 부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직책이든 봉사는 교회와 이웃, 크게는 지역사회의 행복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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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축복은 복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 생활에서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이 바로 저의 의무입니다. 제 아내도 늘 저와 같은 생각이고요.”라고 오희근 장로는 말한다.

사회 생활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려 애쓰면서 때론 독창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다음 날 교회에서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시간을 내기 위해, 전날 직장에서 자주 밤새 일했던 때가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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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직장과 봉사에 따른 필요 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해야 했다. “저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어요. 우리는 제 직장과 교회, 양쪽을 걸어서 다닐만한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래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개인적인 기적과 의무

청년 오희근은 군복무 중에 진리를 찾고 있었다. “도로 복구 작업을 하는 동안 개인적인 기적이 일어났어요. 저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오희근 장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수명으로 재지만, 그는 개인적인 기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잰다. “모든 축복은 복음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 생활에서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이것이 바로 저의 의무입니다.”라고 오희근 장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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